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빈 이씨 (문단 편집) === 영화 === * '''[[전혜진(1976)|전혜진]] - 2014년 《[[사도(영화)|사도]]》''' [[사도세자]]의 생모이지만 갓난 아들을 직접 기르지 못하고 [[궁녀|궁인]]들한테 보내야 하는 [[후궁]]의 면모가 부각된다.[* 왕자녀는 모두 [[유모]]에게 맡겨지는데 [[사도세자]]는 당시 [[왕세자|세자]]로서 [[정성왕후|왕비]]의 자식으로 입적되어 법적으로는 영빈 이씨의 아이가 아니기도 했다.] 떨어져 지내는 어린 아들이 잘 먹고 잘 지내는지 몹시 궁금해하나, 일개 [[후궁]]에 불과해서 실제적으로는 아들에 대한 권한이 거의 없었다.[* 일개 [[왕자]]군이나 [[옹주]]였다면 모를까 [[왕세자]]였던지라...] 역사대로 정비 [[정성왕후]]와 잘 지내는 모습이 나온다. [[혜경궁 홍씨]]가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하자 나보다 자네가 더 오래 [[영조|주상 전하]]를 모시지 않았냐는 [[정성왕후]]의 권유에 따라 홍씨에게 어떻게 하면 시아버지를 거스르지 않고 섬길 수 있는지 잘 가르쳐주기도 하고, 이후 [[정성왕후]]의 환갑이 다가오는데도 [[영조]]가 아는 체도 하지 않자 보다못해 자신이 먼저 중전 마마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열어드리자고 먼저 나설 정도로 [[정성왕후]]를 우대해준다. 하지만 [[영조]] 말년에 총애를 독차지한 [[성관계|승은]][[후궁]]이던 [[숙의 문씨]]가 "그런 일로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혀서야 되겠냐"며 세자의 생모인 영빈에게 무안을 주면서 겁없이 대들고, 이 하극상에 노한 대왕대비 [[인원왕후]]가 문씨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는 자리에 [[정성왕후]]와 [[혜경궁 홍씨]]과 함께 입석해 문씨를 째려 노려본다. 하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영조]]와의 갈등과 학대로 광증([[정신병]])이 더욱 심해진 [[사도세자]]가 온갖 비행을 일삼자 두려워한다. 급기야 [[사도세자|세자]]가 [[영조]]의 시해까지 운운하자 손자인 [[정조(조선)|세손]]만이라도 구하려고 [[영조]]에게 '[[사도세자|세자]]의 대처분'을 요청하면서 결국 [[임오화변]]이 일어나는 원인을 직접적으로 제공한다. [[사도세자]]의 [[사망]] 소식을 듣고 [[혜경궁 홍씨]]에게 "내 아들 내가 죽인 거 아니지?"라고 절규하며 [[사도세자|아들]]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걸 필사적으로 부인하듯이 통곡하고, 이에 [[혜경궁 홍씨]]도 눈물을 흘리며 "이게 어떻게 어머님의 잘못이겠냐"고 하면서 시어머니를 위로함과 동시에 사태를 이 지경으로까지 끌고간 [[영조]]에 대한 울분 아닌 울분을 토해낸다. * [[박선영(1976)|박선영]] - 2018년 《[[궁합(영화)|궁합]]》 궁합에서의 영빈 이씨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가녀리고 약한 이미지가 아니라 아들 이선을 위하여 아들의 이복누나 송화옹주를 적극적으로 음해하는 메인 악역으로 나온다. 그러나 결국 전부 실패하고 세자 이선 앞에서 영조에게 펑펑 울며 용서를 빌고 영조는 세자 이선을 꼭 안아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